계약 각론은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체결하는 구체적인 계약들의 법적 성질과 당사자의 권리·의무를 다루는 민법의 실용적 영역이다. 물건을 사고파는 매매계약부터 집을 빌리는 임대차계약, 일을 맡기는 도급계약, 전문가에게 업무를 위탁하는 위임계약까지, 우리의 경제활동과 사회생활은 다양한 형태의 계약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각의 계약은 고유한 특성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법적 규율을 받는다. 계약 각론을 이해한다는 것은 현실의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구체적인 권리와 의무의 내용을 파악하고, 분쟁이 발생했을 때 적절한 해결방안을 찾을 수 있는 실무적 능력을 기르는 것과 같다.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전형계약들은 오랜 역사를 통해 정형화된 거래유형들이다. 이들은 사회경제적 필요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되었고, 법률은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여 각 계약의 특성에 맞는 규칙을 마련했다. 그러나 현대사회의 거래형태는 점점 복잡해지고 있으며, 전형계약의 요소들이 결합된 혼합계약이나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비전형계약도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형계약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새로운 거래형태를 분석하고 규율하는 기초가 된다.
매매계약의 구조와 특성
매매는 당사자 일방이 재산권을 상대방에게 이전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대금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매매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거래형태로서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며, 다른 모든 유상계약의 원형이 된다.
매매계약의 특성을 살펴보면, 우선 쌍무계약이라는 점이다. 매도인의 목적물 인도의무와 매수인의 대금지급의무가 서로 대가관계에 있다. 또한 유상계약으로서 당사자 모두가 경제적 대가를 지불한다. 낙성계약이므로 당사자의 합의만으로 성립하며, 목적물의 인도나 대금의 지급은 계약의 이행에 해당한다.
매도인의 주된 의무는 목적물을 매수인에게 이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소유권 이전의무, 인도의무, 담보책임이 포함된다. 소유권 이전의무는 매매의 핵심적 효과로서, 매도인은 목적물에 대한 완전한 소유권을 매수인에게 이전해야 한다. 인도의무는 목적물을 매수인이 실제로 지배할 수 있도록 넘겨주는 의무다.
매도인의 담보책임은 매매계약에서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다. 담보책임에는 권리담보책임과 하자담보책임이 있다. 권리담보책임은 매도인이 완전한 권리를 이전하지 못하거나 제3자의 권리가 목적물에 존재하는 경우의 책임이다. 타인의 권리의 목적인 권리를 매매한 경우나 제3자가 목적물에 대해 저당권 등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하자담보책임은 목적물에 숨은 하자가 있는 경우 매도인이 부담하는 책임이다. 하자란 목적물이 통상 가져야 할 성능이나 품질을 갖추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하자담보책임이 성립하려면 하자가 있어야 하고, 그 하자가 숨은 하자여야 하며, 매수인이 계약 당시 하자를 알지 못했어야 한다. 하자담보책임의 효과로는 손해배상청구권, 계약해제권, 그리고 일정한 경우 완전이행청구권이나 대금감액청구권이 인정된다.
매수인의 주된 의무는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대금지급의무에는 약정된 금액을 지급할 의무와 함께 목적물을 수령할 의무도 포함된다. 매수인이 목적물 수령을 거부하면 매도인은 수령지체로 인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임대차계약의 법리
임대차는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게 목적물을 사용·수익하게 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이에 대하여 차임을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임대차는 현대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계약유형으로, 주택임대차부터 상가임대차, 토지임대차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임대차계약의 특성을 보면, 쌍무계약이면서 유상계약이고, 계속적 계약의 성격을 가진다. 계속적 계약이란 일정한 기간에 걸쳐 계속적으로 급부가 이루어지는 계약을 말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임대차관계에서는 당사자 간의 신뢰관계가 중요하고,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가 크다.
임대인의 의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물을 사용·수익에 적합한 상태로 인도하고 계약존속기간 중 그 상태를 유지할 의무다. 이를 위해 임대인은 목적물을 수리하고 보존할 의무를 부담한다. 또한 임차인이 목적물을 평온하게 사용·수익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므로, 제3자가 임차인의 사용·수익을 방해하는 경우 이를 배제할 의무도 있다.
임차인의 주된 의무는 차임을 지급하는 것이다. 차임지급의무는 임대차의 대가적 의무로서 임대차관계의 핵심을 이룬다. 차임은 정기적으로 후불하는 것이 원칙이며, 당사자가 달리 정하지 않으면 매월 말에 지급한다. 임차인은 또한 목적물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존·사용해야 하고, 임대차 종료시에는 목적물을 원상회복하여 반환해야 한다.
임대차의 존속기간에 관해서는 특별한 규정이 있다. 임대차의 존속기간을 20년보다 길게 정한 때에는 그 기간을 20년으로 단축한다. 이는 물권화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규정이다. 또한 기간을 정하지 않거나 불분명하게 정한 임대차는 당사자가 언제든지 해지 통고를 할 수 있으며, 해지통고 후 일정기간이 경과하면 임대차관계가 종료된다.
임대차는 임대인의 지위나 목적물의 소유권이 이전되어도 새로운 임대인에게 대항할 수 있다. 이를 임대차의 대항력이라고 하며, 이는 임차인 보호를 위한 중요한 제도다. 다만 대항력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도급계약의 특수성
도급은 당사자 일방이 어떤 일을 완성할 것을 약정하고 상대방이 그 일의 결과에 대하여 보수를 지급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도급계약은 현대 산업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건설공사, 제조업, 서비스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이용된다.
도급계약의 핵심적 특징은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한다는 점이다. 수급인은 단순히 노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결과물을 완성하여 인도해야 한다. 이는 노무의 제공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위임이나 고용과 구별되는 중요한 차이점이다.
수급인의 주된 의무는 약정한 일을 완성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수급인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일을 수행해야 하고, 약정된 시기까지 일을 완성해야 한다. 수급인은 일의 완성에 필요한 재료를 제공할 의무도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당사자가 달리 정할 수도 있다.
도급인의 주된 의무는 일이 완성된 후 그 결과를 인수하고 보수를 지급하는 것이다. 도급인은 수급인이 일을 완성했는지를 검사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일이 완성되지 않았거나 하자가 있는 경우에는 인수를 거부할 수 있다.
도급에서는 수급인의 하자담보책임이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일의 목적물에 하자가 있는 경우 수급인은 이에 대한 담보책임을 부담한다. 도급에서의 하자담보책임은 매매에서의 하자담보책임과 유사하지만, 일의 완성을 목적으로 하는 도급의 특성상 수정청구권이 인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도급에 관한 규정도 도급계약의 중요한 특징이다. 수급인은 도급인의 승낙을 얻어 제3자로 하여금 자기가 맡은 일을 하게 할 수 있다. 이 경우 원도급인, 수급인, 하수급인 사이에 복잡한 법률관계가 형성되며, 각자의 권리와 의무가 달라진다.
위임계약과 전문직 서비스
위임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에 대하여 사무의 처리를 위탁하고 상대방이 이를 승낙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위임계약은 현대사회에서 전문분업이 발달함에 따라 그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으며, 변호사, 의사, 회계사 등 전문직 서비스의 법적 기초가 된다.
위임계약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신임관계를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위임은 당사자 간의 인적 신뢰를 바탕으로 하므로, 언제든지 해지할 수 있고, 당사자 중 일방이 사망하거나 파산하면 위임관계가 종료된다. 또한 위임은 무상이 원칙이지만, 유상으로 정할 수도 있다.
수임자의 의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위임사무를 처리할 의무다. 이는 추상적 경과실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수임자는 위임자의 지시에 따라 사무를 처리해야 하고, 위임의 본지에 반하지 않는 범위에서만 재위임할 수 있다.
수임자의 보고의무도 중요하다. 수임자는 위임자의 요구가 있을 때는 언제든지 사무처리의 상황을 보고해야 하고, 위임사무가 종료된 때에는 지체 없이 그 경과와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또한 위임사무 처리로 얻은 금전이나 물건이 있으면 이를 위임자에게 인도해야 한다.
위임자의 의무로는 보수지급의무와 비용상환의무가 있다. 위임이 유상인 경우 위임자는 사무처리가 완료된 후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비용상환의무는 수임자가 위임사무 처리를 위해 지출한 비용을 상환해주는 의무로, 위임이 무상인 경우에도 부담한다.
위임의 해지는 각 당사자가 언제든지 할 수 있다. 이는 위임의 신임관계적 성격에서 비롯되는 특징이다. 다만 상대방에게 불리한 시기에 위임을 해지한 때에는 그로 인한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유상위임의 경우에는 해지에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손해배상의무를 면할 수 있다.
기타 중요한 계약 유형
임치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상대방을 위하여 물건을 보관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임치는 무상이 원칙이며, 수치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관물을 보관해야 한다. 보관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경우에는 당사자가 언제든지 반환을 청구하거나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조합계약은 두 사람 이상이 출자하여 공동사업을 경영할 것을 약정함으로써 성립하는 계약이다. 조합은 법인격이 없는 단체로서, 조합재산은 조합원의 합유에 속한다. 조합의 업무집행은 조합원의 과반수로 결정하고, 각 조합원은 조합의 채무에 대해 연대책임을 진다.
종신정기금계약은 당사자 일방이 자기의 재산을 상대방에게 주고 상대방은 그 자신 또는 제3자가 생존하는 기간 정기적으로 일정한 금전이나 물건을 지급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이는 노후보장이나 부양을 위한 계약으로 활용된다.
화해계약은 당사자가 서로 양보하여 당사자간의 분쟁을 종료할 것을 약정하는 계약이다. 화해는 분쟁의 예방이나 종료를 목적으로 하며, 확정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화해계약이 성립하면 당사자는 화해의 내용에 구속되며, 원래의 권리관계는 소멸한다.
비전형계약과 혼합계약
현대사회의 거래형태가 복잡해지면서 민법에 규정되지 않은 새로운 형태의 계약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계약을 비전형계약 또는 무명계약이라고 한다. 비전형계약에는 민법의 일반원칙과 계약자유의 원칙이 적용되며, 필요에 따라 유사한 전형계약의 규정을 유추적용하기도 한다.
혼합계약은 여러 전형계약의 요소가 결합된 계약을 말한다. 예를 들어 호텔 이용계약은 숙박을 위한 임대차적 요소와 서비스 제공을 위한 도급적 요소가 결합되어 있다. 혼합계약의 법적 규율에 관해서는 흡수설, 결합설, 유추적용설 등 여러 이론이 있으며, 구체적 사안에 따라 적절한 해결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리스계약, 프랜차이즈계약, 소프트웨어 라이선스계약 등이 대표적인 비전형계약의 예다. 이러한 계약들은 각각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의 전형계약 규정만으로는 충분히 규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따라서 법원은 계약의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기능을 고려하여 적절한 법리를 개발해 나가고 있다.
결론
계약 각론은 민법 채권편의 실용적 핵심을 이루는 영역으로, 우리가 일상에서 체결하는 다양한 계약관계의 법적 구조를 제시한다. 매매, 임대차, 도급, 위임 등 각각의 전형계약은 서로 다른 경제적 목적과 사회적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당사자의 권리와 의무도 다르게 규정된다. 이러한 전형계약들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계약 체결시 적절한 계약 유형을 선택하고, 계약 내용을 합리적으로 정하며, 분쟁 발생시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또한 현대사회의 새로운 거래형태인 비전형계약이나 혼합계약을 분석하고 규율하는 데에도 전형계약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계약법은 단순한 법조문의 해석을 넘어서 실제 거래관계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살아있는 법이며, 이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현대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 법적 소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