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개론 10. 행정법 총칙 – 행정행위·행정입법·공권력 행사와 국민-국가 관계의 법적 규율

행정법의 의의와 특성

행정법은 행정작용에 관한 법규범의 총체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등 행정주체가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행하는 모든 활동과 그에 따른 국민과의 관계를 규율하는 법 영역이다. 현대 국가에서 행정의 역할이 확대되면서 행정법의 중요성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

행정법의 가장 큰 특징은 공법적 성격이다. 사법이 대등한 당사자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반면, 행정법은 권력관계에 있는 행정주체와 국민 간의 관계를 규율한다. 행정주체는 공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우월적 지위에 있고, 국민은 이에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기본적 구조다.

하지만 현대 행정법은 단순한 권력관계가 아니라 법치주의에 기초한 규율 관계로 발전했다. 행정도 법률에 근거해서 행해져야 하고,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때는 엄격한 요건과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행정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에게는 구제 수단이 보장되어야 한다.

행정법은 성문법과 불문법이 혼재하는 특징도 갖는다. 헌법, 법률, 명령, 조례 등의 성문법이 기본이지만, 행정관습법이나 행정선례, 조리 등의 불문법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행정실무에서는 관례나 선례가 중요한 행동 기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법의 법원과 체계

행정법의 가장 중요한 법원은 헌법이다. 헌법은 행정권의 한계를 설정하고 행정작용의 기본 원칙을 제시한다. 기본권 조항은 행정작용의 한계가 되고, 국가조직에 관한 조항은 행정조직의 근거가 된다. 법치주의 원칙, 비례원칙 등 헌법상 기본 원리들도 행정법 전반을 지배한다.

법률은 행정법의 핵심적 법원이다. 법률유보 원칙에 따라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작용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 행정기본법, 행정절차법, 개별 행정법률들이 행정작용의 구체적 근거와 절차를 정하고 있다.

명령과 조례도 중요한 법원이다.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등의 명령은 법률을 구체화하거나 시행하기 위해 제정된다.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와 규칙은 자치사무나 위임사무의 처리를 위해 제정된다. 다만 이들은 모두 법률에 위반될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행정법의 기본 원리

법치행정의 원리는 행정법의 최고 원리다. 모든 행정작용은 법률에 근거해서 행해져야 하고, 법률이 정한 절차와 방법을 준수해야 한다. 이는 자의적인 행정작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적 원칙이다.

법치행정의 원리는 법률의 우위와 법률의 유보로 구체화된다. 법률의 우위는 행정작용이 법률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원칙이고, 법률의 유보는 일정한 행정작용에는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 원칙이다.

비례원칙도 행정법의 기본 원리 중 하나다. 행정목적과 수단 사이에 균형이 있어야 하고,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만 사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과도한 행정작용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원칙이다.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행정청이 일단 특정한 행위를 하거나 견해를 표명한 경우, 국민이 이를 신뢰하고 행동했다면 함부로 번복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행정주체와 행정기관

행정주체의 개념과 종류

행정주체는 행정권능을 갖고 자기 이름으로 행정작용을 할 수 있는 법주체를 말한다. 행정작용의 귀속 주체로서 행정작용으로 인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된다. 행정주체와 행정기관을 구별하는 것이 중요한데, 행정기관은 행정주체를 대표하여 의사를 결정하고 표시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국가는 가장 기본적인 행정주체다. 중앙행정기관들은 모두 국가를 대표하여 행정작용을 하며, 그 결과는 국가에 귀속된다. 국가는 포괄적 행정권능을 갖고 있어서 법률이 금지하지 않는 한 모든 행정작용을 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중요한 행정주체다. 특별시, 광역시, 도, 시, 군, 구 등이 지방자치단체에 해당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일정한 지역을 관할하여 그 지역의 사무를 처리하는 행정주체로, 국가와는 별개의 법인격을 갖는다.

공공기관도 행정주체가 될 수 있다. 정부출연기관, 공기업, 준정부기관 등이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 공권력을 행사하는 경우 행정주체의 지위를 갖는다. 다만 이들의 행정주체성은 개별 법률에 의해 인정되는 것이므로 그 범위가 제한적이다.

행정기관의 분류와 권한

행정기관은 행정주체의 의사를 결정하고 대외적으로 표시하는 기관이다. 행정기관 자체는 권리·의무의 주체가 아니라 행정주체를 위해 행위하는 기관에 불과하다. 하지만 대외관계에서는 행정기관이 직접 상대방과 관계를 맺는 것처럼 보인다.

중앙행정기관은 부, 처, 청, 위원회 등으로 분류된다. 부는 특정 행정 분야를 종합적으로 담당하는 최상급 행정기관이다. 처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 청은 부 소속의 외청으로 전문성과 독립성이 요구되는 업무를 담당한다.

위원회는 합의제 행정기관으로 복수의 위원이 합의하여 의사를 결정한다.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위원회 제도는 전문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되는 조직 형태다.

지방행정기관은 시·도와 시·군·구로 구분된다. 시·도는 광역자치단체로 광역적 사무를 담당하고, 시·군·구는 기초자치단체로 주민 생활과 밀접한 기초적 사무를 담당한다. 각각 자치사무와 위임사무를 처리한다.

권한의 위임과 위탁

권한의 위임은 상급 행정기관이 법령에 의해 자신의 권한을 하급 행정기관에 이양하는 것이다. 위임이 이루어지면 권한이 완전히 이전되어 피위임기관이 자기 권한으로 행사하게 된다. 따라서 처분의 명의도 피위임기관의 명의로 하게 된다.

권한의 위탁은 행정기관이 법령에 의해 자신의 권한을 다른 행정기관이나 공공단체 또는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다. 위탁의 경우 권한 자체는 여전히 위탁기관에 남아 있고, 수탁기관은 위탁기관을 대신하여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위임과 위탁은 모두 법령에 근거가 있어야 한다. 또한 위임이나 위탁을 받은 기관은 그 권한을 다시 위임하거나 위탁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다. 이는 재위임·재위탁 금지 원칙이라고 한다.

전결권은 상급자의 결재권을 하급자가 대신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행정의 효율성을 위한 내부적 권한 배분으로, 대외적으로는 여전히 상급기관의 행위로 된다. 전결권은 조직 내부의 사무분장에 관한 것이므로 법령의 근거 없이도 가능하다.

행정행위의 개념과 종류

행정행위의 정의와 특징

행정행위는 행정청이 구체적 사실에 관하여 법규를 적용하여 국민의 권리·의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방적인 공권력 행사를 말한다. 허가, 인가, 면허, 명령, 금지 등이 대표적인 행정행위다. 행정행위는 행정작용의 가장 중요한 형태로 국민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행정행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일방성이다. 상대방의 동의나 합의 없이 행정청이 일방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이는 사법상 계약과 구별되는 공법적 특성이다. 다만 현대에는 국민 참여와 협력을 중시하여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는 추세다.

공정력도 행정행위의 중요한 특징이다. 행정행위는 일단 성립하면 그것이 위법하더라도 권한 있는 기관에 의해 취소되기 전까지는 적법한 것으로 추정되어 효력을 갖는다. 이는 행정의 안정성과 실효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자력집행력은 행정행위를 강제로 실현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국민이 행정행위에 따르지 않을 때 행정청이 직접 강제력을 행사하여 그 내용을 실현할 수 있다. 다만 자력집행력은 법률에 근거가 있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행정행위의 분류

행정행위는 여러 기준에 따라 분류된다. 법적 효과에 따른 분류가 가장 기본적이다. 하명적 행정행위는 국민에게 새로운 의무를 부과하거나 기존 권리를 제한하는 행위다. 명령, 금지, 철회, 취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형성적 행정행위는 새로운 법적 지위나 법률관계를 설정하는 행위다. 임명, 면허, 영업허가 등이 대표적이다. 확인적 행정행위는 기존에 존재하는 법적 사실이나 법률관계를 확인하는 행위로, 확인서 발급, 증명서 교부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재량행위와 기속행위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속행위는 법률이 요건과 효과를 명확히 정해놓아서 행정청에 판단의 여지가 없는 행위다. 재량행위는 법률이 행정청에 일정한 판단 권한을 부여한 행위로, 행정청이 구체적 상황을 고려하여 적절한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즉시확정력의 유무에 따라 일반처분과 특별권력관계 내의 처분으로 나누기도 한다. 일반처분은 불복절차를 거쳐야 확정되지만, 특별권력관계 내의 처분은 즉시 확정력을 갖는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다만 최근에는 특별권력관계 이론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행정행위의 내용

허가는 법령에 의해 일반적으로 금지된 행위를 특정인에 대해 해제하여 적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행위다. 건축허가, 영업허가 등이 대표적이다. 허가는 신청인이 법정 요건을 충족하면 허가해야 하는 기속행위인 경우가 많다.

인가는 제3자의 법률행위를 보충하여 법적 효력을 완성시키는 행정행위다. 정관변경 인가, 합병 인가 등이 그 예다. 인가가 없으면 해당 법률행위는 효력이 없거나 불완전한 상태가 된다.

특허는 새로운 권리나 법적 지위를 설정하여 부여하는 행정행위다. 공유수면 매립허가, 도로점용허가 등이 특허에 해당한다. 특허는 행정청의 재량권이 비교적 넓게 인정되는 경우가 많다.

면허는 일정한 자격이나 능력을 공증하는 행정행위다. 의사면허, 변호사 자격증 등이 면허에 해당한다. 면허는 한번 취득하면 지속적인 효력을 갖는 특징이 있다.

행정입법의 의의와 형태

행정입법의 개념

행정입법은 행정기관이 일반적·추상적 규범을 정립하는 작용을 말한다. 법률과 달리 행정기관이 제정하지만, 일반적·추상적 성격을 갖는다는 점에서 구체적·개별적인 행정행위와 구별된다. 현대 행정국가에서는 행정입법의 비중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행정입법의 등장 배경에는 현대 사회의 복잡성과 전문성이 있다. 의회가 모든 세부사항까지 법률로 정하기는 어렵고, 급변하는 사회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행정기관의 전문성과 기동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법률에서는 기본적 사항만 정하고 구체적 내용은 행정입법에 위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행정입법의 확산은 민주주의와 권력분립 원칙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입법권은 본래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 속하는데, 행정기관이 입법 기능을 담당하면 민주적 정당성 문제가 제기된다. 따라서 행정입법에는 엄격한 한계와 통제가 필요하다.

위임명령과 집행명령

위임명령은 법률에서 구체적으로 위임한 사항에 관하여 제정되는 행정입법이다. 법률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또는 “총리령으로 정한다”는 식으로 명시적 위임 근거가 있어야 한다. 위임명령은 위임받은 범위 내에서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위임명령이 유효하려면 위임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위임의 구체성과 명확성이 가장 중요한 요건이다. 법률에서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하며, 예측가능해야 한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위임은 허용되지 않는다.

집행명령은 법률의 집행을 위해 필요한 세부사항을 정하는 행정입법이다. 법률에 명시적 위임 근거가 없어도 제정할 수 있지만, 법률의 내용을 구체화하는 범위를 벗어날 수 없다. 집행명령은 법률에 위반되거나 법률이 정하지 않은 새로운 의무를 부과할 수 없다.

집행명령의 한계는 법률유보 원칙에 의해 결정된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법률에 근거가 있어야 하므로, 집행명령만으로는 이러한 사항을 정할 수 없다. 집행명령은 법률이 정한 틀 내에서 시행에 필요한 기술적·절차적 사항만 정할 수 있다.

행정규칙의 성격

행정규칙은 행정기관이 소관 사무의 처리기준이나 절차를 정한 내부 규범이다. 훈령, 예규, 고시, 지침 등 다양한 형태로 제정된다. 행정규칙은 본래 행정기관 내부에서만 효력을 갖는 것으로, 대외적으로는 구속력이 없다는 것이 전통적 견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행정규칙이 국민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급여나 혜택의 지급 기준, 인허가의 세부 기준 등을 행정규칙으로 정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이런 경우 행정규칙이 사실상 대외적 구속력을 갖게 된다.

최근 판례와 학설은 행정규칙도 일정한 조건하에서 대외적 구속력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법률이 행정청에 재량권을 부여한 경우, 행정규칙으로 그 재량권 행사의 기준을 정했다면 행정청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그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행정규칙의 대외적 효력을 인정할 때는 평등원칙과 신뢰보호 원칙이 중요한 근거가 된다. 행정청이 일정한 기준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처분해 왔다면, 합리적 이유 없이 다르게 처분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 또한 국민이 그 기준을 신뢰하고 행동했다면 신뢰보호 원칙에 의해 보호되어야 한다.

공권력 행사의 원칙과 한계

적법성의 원칙

적법성의 원칙은 모든 행정작용이 법률에 근거해서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법치주의의 핵심 내용으로, 자의적인 행정작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기본 원칙이다.

법률의 우위는 행정작용이 법률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 원칙이다. 법률이 정한 내용과 다르거나 법률에 위반되는 행정작용은 무효가 된다. 이는 의회가 제정한 법률이 행정작용에 우선한다는 의미다.

법률의 유보는 일정한 행정작용에는 반드시 법률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는 적극적 원칙이다. 특히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행정작용은 법률유보의 대상이 된다. 법률유보의 범위와 밀도는 해당 기본권의 성격과 제한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위임명확성의 원칙도 적법성 원칙의 중요한 내용이다. 법률에서 행정입법에 위임할 때는 위임하는 사항과 범위가 구체적이고 명확해야 한다. 포괄적이고 일반적인 위임은 국회의 입법권을 침해하고 행정권의 자의적 행사를 가능하게 하므로 허용되지 않는다.

비례원칙과 과잉금지

비례원칙은 행정목적과 수단 사이에 적절한 비례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목적 달성에 필요한 최소한의 수단만 사용해야 하고, 수단으로 인한 불이익이 달성하려는 이익보다 커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비례원칙은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절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라는 네 가지 하위 원칙으로 구성된다. 목적의 정당성은 추구하는 목적이 헌법과 법률에 부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수단의 적절성은 선택한 수단이 목적 달성에 적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피해의 최소성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여러 수단 중에서 가장 덜 침해적인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법익의 균형성은 수단으로 인한 불이익이 달성하려는 이익보다 크지 않아야 한다는 원칙이다.

비례원칙은 특히 기본권을 제한하는 행정작용에서 중요한 심사 기준이 된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비례원칙을 적용하여 행정작용의 정당성을 엄격하게 심사하고 있다.

신뢰보호의 원칙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는 원칙이다. 행정청이 일정한 행위를 하거나 견해를 표명하여 국민이 이를 신뢰하고 행동했다면, 합리적 이유 없이 이를 번복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다.

신뢰보호의 원칙이 적용되려면 일정한 요건이 필요하다. 먼저 행정청의 신뢰기반이 있어야 한다. 행정청이 일정한 처분을 하거나 견해를 표명하는 등 국민이 신뢰할 만한 근거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국민의 신뢰가 정당해야 한다. 명백히 위법한 행정행위를 신뢰한 경우에는 보호받을 수 없다.

신뢰에 따른 현실적 조치도 필요하다. 단순히 신뢰만 한 것이 아니라 그 신뢰에 기초하여 실제로 어떤 행동을 했어야 한다. 또한 신뢰 침해가 있어야 한다. 행정청이 종전의 행위나 견해와 다른 행동을 하여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경우여야 한다.

신뢰보호의 원칙은 행정의 안정성과 법적 안정성 사이의 조화를 추구한다. 위법한 행정행위는 철회되어야 하지만, 국민의 정당한 신뢰는 보호되어야 한다는 딜레마를 해결하는 원칙이다.

국민과 국가의 관계

특별권력관계와 일반권력관계

전통적으로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일반권력관계와 특별권력관계로 구분되었다. 일반권력관계는 국가가 일반 국민에 대해 갖는 통치권력 관계로, 법률에 근거한 제한적 관계다. 특별권력관계는 특별한 법적 근거에 의해 성립하는 긴밀하고 포괄적인 권력관계로, 공무원관계, 학교관계, 수용자관계 등이 그 예다.

특별권력관계에서는 포괄적 복종의무, 제재수단의 자유선택권, 법률유보 배제라는 특징이 있다고 보았다. 즉, 특별권력관계에 있는 자는 포괄적으로 복종해야 하고, 국가는 자유롭게 제재수단을 선택할 수 있으며, 법률의 근거 없이도 권리를 제한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특별권력관계 이론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은 특별권력관계에서도 보장되어야 하고, 중요한 권리 제한에는 법률 근거가 필요하며, 권력 행사에도 적정절차가 요구된다는 것이 확립된 견해다. 특별권력관계는 이제 단순히 더 긴밀한 법률관계를 의미할 뿐이다.

공법상 법률관계의 특징

공법상 법률관계는 권력관계를 전제로 한다. 행정주체는 공권력을 배경으로 우월적 지위에 있고, 국민은 이에 복종해야 하는 관계가 기본 구조다. 하지만 이러한 권력관계도 법치주의 원칙에 따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공익실현이 공법상 법률관계의 목적이다. 사법상 법률관계가 개인의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공법상 법률관계는 공공의 이익 실현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개인의 이익보다 공익이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일방적 의사표시로 법률관계가 성립하거나 변경되는 것도 공법상 법률관계의 특징이다. 행정행위는 상대방의 동의 없이도 일방적으로 권리·의무를 설정할 수 있다. 이는 공익 실현의 신속성과 효율성을 위한 것이다.

현대적 변화와 협력관계

현대 행정에서는 일방적 권력관계보다는 협력관계가 중시되고 있다. 행정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국민의 자발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참여, 협의, 합의 등의 요소가 행정과정에 도입되고 있다.

행정계약이 그 대표적 예다. 전통적인 일방적 행정행위 대신 쌍방의 합의에 의한 계약 형태로 행정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 늘어나고 있다. 민간위탁, 공사협약 등이 행정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국민참여도 확대되고 있다. 행정절차에서 의견수렴, 공청회, 주민투표 등을 통해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증가하고 있다. 이는 행정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고 정책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정보공개와 투명성도 강화되고 있다. 국민의 알 권리 보장과 행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정보공개제도가 확립되었고, 행정과정의 공개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행정의 실효성 확보 수단

행정강제의 개념과 종류

행정강제는 행정상 의무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사용되는 강제수단이다. 국민이 행정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동원되는 물리적·심리적 압박수단을 말한다. 행정강제는 행정의 실효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행정강제는 대집행, 강제징수, 직접강제, 즉시강제로 분류된다. 대집행은 의무자가 대체가능한 행위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행정청이 직접 또는 제3자로 하여금 그 의무를 이행하게 하고 비용을 의무자에게 징수하는 방법이다.

강제징수는 금전급부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때 재산을 압류하여 매각하거나 추심하는 방법이다. 세금, 과태료, 부담금 등의 징수에 주로 사용된다. 직접강제는 의무자의 신체나 재산에 직접 실력을 가하여 의무이행과 같은 상태를 실현하는 방법이다.

즉시강제는 의무 위반을 전제로 하지 않고 공공의 안전과 질서 유지를 위해 즉시 실력을 행사하는 방법이다. 위험방지나 긴급상황 대처를 위해 사용되며, 법률에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행정벌의 체계

행정벌은 행정상 의무 위반에 대한 제재수단이다. 행정형벌과 행정질서벌로 구분된다. 행정형벌은 행정상 의무 위반을 범죄로 규정하여 형벌을 과하는 것이고, 행정질서벌은 경미한 행정상 의무 위반에 대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것이다.

행정형벌은 형법의 일반 원칙이 적용된다. 죄형법정주의, 무죄추정의 원칙, 적정절차의 원칙 등이 모두 적용되며, 법원이 형사절차에 따라 형을 선고한다. 벌금, 징역, 금고 등의 형벌이 과해질 수 있다.

행정질서벌인 과태료는 행정청이 직접 부과한다. 형벌이 아니므로 전과자가 되지 않으며, 행정절차에 따라 부과된다. 다만 과태료 부과에 불복하는 경우 법원에 이의신청을 할 수 있다.

행정벌은 일반예방과 특별예방 효과를 목적으로 한다. 행정상 의무 위반을 억제하여 행정질서를 유지하고, 위반자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통해 재범을 방지하려는 것이다.

행정지도의 활용

행정지도는 행정기관이 특정한 행정목적의 실현을 위해 상대방의 임의적 협력을 구하는 비강제적 행정작용이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행정목적 달성을 위한 효과적 수단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행정지도의 특징은 비강제성이다. 상대방이 따르지 않더라도 직접적인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 다만 행정지도를 따르지 않을 경우 다른 불이익한 조치가 뒤따를 가능성이 있어서 사실상의 강제력을 갖는 경우가 많다.

행정지도의 방법은 다양하다. 권고, 요청, 조언, 지시, 경고 등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구두로 할 수도 있고 서면으로 할 수도 있다. 개별적으로 할 수도 있고 일반적으로 할 수도 있다.

행정지도의 한계도 명확하다. 법률에 근거가 없는 의무를 강요해서는 안 되고, 상대방의 임의성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행정지도에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불이익한 처분을 해서는 안 된다.

행정절차의 보장

행정절차법의 의의

행정절차법은 행정청이 행정처분을 하거나 행정입법을 제정할 때 지켜야 할 절차를 정한 법률이다. 1996년 제정되어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적정절차의 원리를 구체화한 것으로 행정법의 발전에 획기적 전환점이 되었다.

행정절차법의 목적은 행정의 공정성, 투명성, 신뢰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행정청이 자의적으로 처분하는 것을 방지하고, 국민의 행정 참여를 보장하며, 행정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높이려는 것이다.

행정절차법은 처분절차와 행정입법절차를 모두 규율한다. 처분절차에서는 사전통지, 의견제출, 이유제시 등의 절차를 보장하고, 행정입법절차에서는 예고, 의견수렴, 공포 등의 절차를 정하고 있다.

처분절차의 주요 내용

사전통지는 행정청이 처분을 하기 전에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는 절차다. 처분의 제목, 근거, 내용, 의견제출 방법 등을 통지해야 한다. 이를 통해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방어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한다.

의견제출은 당사자가 처분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절차다. 서면 또는 구두로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행정청은 제출된 의견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 이는 행정의 민주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절차다.

청문은 중요한 처분을 할 때 실시하는 공개적이고 대심적인 절차다. 당사자가 직접 출석하여 진술하고 증거를 제출할 수 있으며, 행정청은 공정한 심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한다. 청문은 가장 완전한 형태의 적정절차라고 할 수 있다.

이유제시는 처분을 할 때 그 근거와 이유를 명시하는 절차다. 처분의 근거 법령, 사실관계, 처분의 내용과 이유 등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를 통해 처분의 적법성을 검증할 수 있고, 불복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행정입법절차

행정입법절차는 국민 참여를 통해 행정입법의 민주적 정당성을 높이는 절차다. 법령의 제정·개정 시 국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반영하도록 하는 절차들이 마련되어 있다.

입법예고는 법령을 제정·개정하기 전에 그 내용을 미리 공개하는 절차다. 관보, 인터넷 등을 통해 법령안의 제정·개정 이유, 주요 내용 등을 공고한다. 원칙적으로 40일 이상 예고해야 한다.

의견수렴은 입법예고 기간 중 국민의 의견을 받는 절차다. 누구나 의견을 제출할 수 있으며, 행정청은 제출된 의견을 검토하여 법령안에 반영하거나 반영하지 않은 이유를 공개해야 한다.

공청회나 토론회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의견수렴을 하기도 한다. 특히 국민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법령의 경우 공청회 개최가 의무화되어 있다.

결론

행정법은 현대 국가에서 국민과 행정주체 간의 관계를 규율하는 핵심적 법 영역이다. 행정행위, 행정입법, 공권력 행사 등을 통해 행정주체는 공익을 실현하지만, 동시에 국민의 권리를 제한할 수도 있다. 따라서 법치주의 원칙에 따른 엄격한 규율이 필요하다.

적법성의 원칙, 비례원칙, 신뢰보호의 원칙 등은 행정작용의 한계를 설정하는 기본 원리들이다. 이러한 원리들을 통해 자의적인 행정작용을 방지하고 국민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다. 또한 행정절차의 보장을 통해 행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현대 행정법은 일방적 권력관계에서 협력관계로, 폐쇄적 행정에서 개방적이고 참여적인 행정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민주주의의 발전과 국민의 권리의식 향상에 따른 자연스러운 결과다. 앞으로도 행정법은 행정의 효율성과 국민의 권익 보호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면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