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법 7. 법률행위 총설: 요건·종류·해석의 기본 원리와 체계

법률행위는 민법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 중 하나로, 일상생활에서 이루어지는 대부분의 법적 관계를 설명하는 핵심 도구다. 물건을 사고팔고, 집을 빌리고, 돈을 빌려주는 모든 행위가 법률행위에 해당한다. 법률행위의 개념과 원리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민법 전체를 관통하는 기본기를 쌓는 일이다.

법률행위의 개념과 본질

법률행위의 정의

법률행위란 일정한 법률효과의 발생을 의욕하는 하나 또는 여러 개의 의사표시를 불가결의 요소로 하는 법률요건을 말한다. 쉽게 말해, 당사자가 원하는 법적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하는 의사표시를 중심으로 한 행위다.

법률행위의 핵심은 의사표시에 있다. 의사표시는 일정한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려는 내심의 의사를 외부에 표시하는 행위다. 예를 들어 “이 물건을 10만원에 판다”고 말하는 것은 매매계약이라는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려는 의사표시다.

법률행위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구현하는 수단이다.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법률관계를 형성하고 변경할 수 있다는 것이 사적 자치의 핵심이며, 법률행위는 이를 실현하는 도구 역할을 한다.

법률행위와 유사개념의 구별

법률행위는 법률사실의 한 종류지만, 다른 법률사실과는 구별된다. 법률사실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모든 사실을 말하며, 크게 법률행위와 법률행위 아닌 사실로 나뉜다.

법률행위 아닌 사실에는 사건과 준법률행위가 있다. 사건은 의사와 무관하게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사실로, 출생이나 사망, 시효완성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준법률행위는 의사표시를 포함하지만 법률효과 발생을 의욕하지 않는 행위로, 최고나 통지, 승낙 등이 대표적이다.

사실행위는 법률효과와 관계없이 단순히 사실상의 결과만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다. 물건을 점유하거나 건물을 짓는 행위 등이 사실행위에 해당한다. 다만 사실행위도 법률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법률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

법률행위의 성립요건

의사표시의 합치

법률행위가 성립하려면 우선 의사표시가 있어야 한다. 단독행위는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성립하지만, 계약은 둘 이상의 의사표시가 합치해야 성립한다.

의사표시의 합치란 청약과 승낙이 일치하는 것을 말한다. 청약은 계약체결을 제안하는 의사표시이고, 승낙은 청약에 동의하는 의사표시다. 청약과 승낙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할 때 계약이 성립한다.

청약의 유효기간 내에 승낙이 도달해야 하고, 승낙은 청약자에게 도달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격지자 간의 계약에서는 승낙의 통지가 청약자에게 도달한 때 계약이 성립한다(민법 제531조).

내용의 적법성과 확정성

법률행위의 내용이 법률,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민법 제103조). 강행법규에 위반하거나 반사회적인 내용의 법률행위는 무효다.

법률행위의 내용은 확정되어 있거나 확정될 수 있어야 한다. 내용이 불명확하면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할 수 없고,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결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내용이 일부 불확정이라도 관습이나 신의칙에 의해 확정될 수 있다면 유효한 법률행위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시가로 매도한다”는 약정은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확정될 수 있다.

당사자의 행위능력

법률행위를 하는 당사자는 행위능력을 갖춰야 한다. 행위능력이 없거나 제한된 자가 한 법률행위는 무효이거나 취소할 수 있다.

미성년자, 피한정후견인, 피성년후견인은 행위능력이 제한된다. 이들이 단독으로 한 법률행위는 원칙적으로 취소할 수 있다. 다만 단순히 권리만을 얻거나 의무만을 면하는 행위는 단독으로 할 수 있다.

법인의 경우에는 정관이나 법률에서 정한 목적의 범위 내에서만 행위능력을 갖는다. 목적범위를 벗어난 행위는 무효가 되거나 취소할 수 있다.

법률행위의 종류

당사자 수에 따른 분류

법률행위는 당사자 수에 따라 단독행위, 계약, 합동행위로 나뉜다.

단독행위는 일방의 의사표시만으로 성립하는 법률행위다. 유언, 해제, 해지, 추인, 취소 등이 단독행위에 해당한다. 단독행위는 상대방의 동의나 승낙이 필요하지 않지만, 상대방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게 의사표시가 도달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계약은 둘 이상의 대립하는 의사표시의 합치로 성립하는 법률행위다. 매매, 임대차, 고용, 위임 등 대부분의 거래가 계약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계약은 청약과 승낙의 합치로 성립하며, 당사자 간에 권리와 의무가 상호 대응하는 특징이 있다.

합동행위는 둘 이상의 동일한 방향의 의사표시가 합치하여 성립하는 법률행위다. 사단법인의 설립이나 조합계약 등이 합동행위에 해당한다. 합동행위는 당사자들이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특징이 있다.

법률효과에 따른 분류

법률행위는 발생하는 법률효과에 따라서도 분류할 수 있다.

재산행위는 재산상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법률행위다. 매매, 증여, 임대차 등이 재산행위에 해당한다. 재산행위는 다시 물권행위와 채권행위로 나뉜다. 물권행위는 물권의 변동을 직접 목적으로 하는 행위이고, 채권행위는 채권의 발생을 목적으로 하는 행위다.

신분행위는 신분관계의 변동을 목적으로 하는 법률행위다. 혼인, 이혼, 인지, 양자입양 등이 신분행위에 해당한다. 신분행위는 당사자의 인격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일반적인 재산행위와는 다른 특별한 규율을 받는다.

내용의 특성에 따른 분류

법률행위는 내용의 특성에 따라서도 여러 종류로 나뉜다.

유상행위와 무상행위의 구분이 대표적이다. 유상행위는 당사자 쌍방이 대가적 의미를 갖는 출연을 하는 행위다. 매매, 임대차, 고용 등이 유상행위에 해당한다. 무상행위는 한쪽 당사자만 출연하고 상대방은 이익만 받는 행위다. 증여, 사용대차, 위임 등이 무상행위에 해당한다.

생전행위와 사인행위의 구분도 중요하다. 생전행위는 행위자가 생존 중에 효력이 발생하는 행위이고, 사인행위는 행위자의 사망을 조건으로 하거나 사망시에 효력이 발생하는 행위다. 유언이 대표적인 사인행위다.

법률행위의 해석

해석의 의의와 필요성

법률행위의 해석이란 법률행위의 내용을 명확히 확정하는 작업이다. 당사자가 사용한 표현이 불명확하거나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을 때,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하기 위해 해석이 필요하다.

법률행위의 해석은 법률의 해석과는 다른 특성을 갖는다. 법률의 해석은 객관적이고 통일적인 해석을 추구하지만,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의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의사를 파악하는 것이 목적이다.

해석과 보충의 구별도 중요하다. 해석은 당사자가 이미 표시한 의사의 내용을 명확히 하는 것이고, 보충은 당사자가 정하지 않은 사항을 법률이나 관습에 따라 채우는 것이다.

해석의 기준과 방법

법률행위 해석의 최고 원칙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탐구하는 것이다. 당사자가 실제로 의도한 바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해석의 출발점이다.

진정한 의사를 파악할 수 없을 때는 표시행위의 객관적 의미를 기준으로 한다. 이를 표시주의적 해석이라고 한다. 당사자가 사용한 문언의 통상적 의미, 거래관행, 사회통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해석에는 여러 원칙이 적용된다. 전체적·체계적 해석의 원칙에 따라 계약 전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개별 조항의 의미도 계약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

해석의 보조원칙들

의심스러운 때의 해석원칙들도 중요하다. 채무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원칙(contra proferentem)은 계약서를 작성한 당사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하는 것이다. 특히 약관의 경우 약관작성자에게 불리하게 해석한다.

무상행위에서는 채무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는 것이 원칙이다. 무상행위에서는 채무자가 아무런 대가 없이 의무를 부담하므로, 의심스러운 경우 채무자의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해석한다.

보존적 해석의 원칙도 있다. 법률행위를 무효로 만드는 해석보다는 유효하게 만드는 해석을 우선한다. 당사자는 일반적으로 유효한 법률행위를 하려고 의도하기 때문이다.

법률행위의 효력발생시기

의사표시의 효력발생

법률행위의 효력은 의사표시가 효력을 발생할 때 생긴다. 의사표시의 효력발생시기는 상대방이 있는지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상대방이 있는 의사표시는 상대방에게 도달한 때 효력이 발생한다(민법 제111조). 도달이란 의사표시가 상대방이 인식할 수 있는 객관적 상태에 놓이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상대방이 인식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상대방이 없는 의사표시는 의사표시를 한 때 효력이 발생한다. 유언이나 유기재산의 국고귀속 포기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조건과 기한의 영향

법률행위에 조건이나 기한이 붙은 경우 효력발생시기가 달라진다.

정지조건이 붙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 효력이 발생한다. 해제조건이 붙은 법률행위는 조건이 성취된 때 효력이 소급적으로 소멸한다.

기한이 있는 법률행위는 기한이 도래한 때 효력이 발생하거나 소멸한다. 시기는 조건과 달리 성취가 확실한 미래의 사실이므로, 기한부 법률행위도 기한 도래 전에 일정한 효력을 갖는다.

법률행위와 사적 자치

사적 자치의 원칙

사적 자치는 개인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법률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는 원칙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와 자기결정권을 바탕으로 한다.

사적 자치는 여러 측면에서 구현된다. 계약자유의 원칙은 계약을 체결할지 여부, 누구와 계약할지, 어떤 내용으로 계약할지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소유권절대의 원칙은 소유자가 자신의 재산을 자유롭게 사용·수익·처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과실책임의 원칙도 사적 자치와 관련이 있다. 자신의 행위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만 책임을 진다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를 보장하는 기초가 된다.

사적 자치의 한계

사적 자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일정한 한계가 있다. 현대 사회에서는 개인의 자유뿐만 아니라 사회전체의 이익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행법규는 사적 자치의 대표적인 한계다. 당사자의 합의로도 강행법규를 배제할 수 없다. 선량한 풍속과 사회질서도 사적 자치의 한계가 된다.

신의성실의 원칙과 권리남용금지의 원칙도 사적 자치를 제한한다. 아무리 당사자가 자유롭게 정한 내용이라도 신의칙에 반하거나 권리를 남용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결론

법률행위는 사적 자치의 원칙을 구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의사표시를 중심으로 하는 법률요건이다. 법률행위가 유효하게 성립하려면 의사표시의 합치, 내용의 적법성과 확정성, 당사자의 행위능력 등의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법률행위는 당사자 수, 법률효과, 내용의 특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며, 각각 고유한 규율을 받는다.

법률행위의 해석은 당사자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이를 위해 다양한 해석원칙과 방법이 동원된다. 법률행위의 효력발생시기는 의사표시의 도달시점을 기준으로 하되, 조건이나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그에 따라 달라진다. 사적 자치의 원칙은 법률행위의 기초가 되지만, 강행법규나 공서양속 등에 의해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법률행위에 대한 체계적 이해는 민법의 전 영역을 관통하는 기본기로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