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절대강자 엔비디아가 유럽 대륙을 향한 대대적인 투자 공세에 나선다. 젠슨 황 CEO는 최근 파리에서 열린 비바테크(VivaTech) 2025와 GTC 파리 키노트에서 “유럽은 AI를 단순히 도입하는 것을 넘어, 직접 구축한다”며 유럽 각국의 AI 주권 확보를 위한 포괄적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는 단순한 사업 확장을 넘어선 지정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 미국과 중국 간 AI 패권 경쟁이 치열해지는 가운데, 유럽이 제3의 축으로 부상하려는 움직임과 맞물린 것이다.
18,000개 GPU로 구축되는 유럽 최대 AI 인프라
가장 주목할 만한 발표는 프랑스 AI 스타트업 미스트랄(Mistral AI)과의 파트너십이다. 미스트랄 AI는 18,000개의 NVIDIA Grace Blackwell 시스템으로 구동되는 엔드 투 엔드 클라우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복수의 시설로 확장될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한다. 에손 지역에 위치할 40MW 데이터센터에 18,000개의 블랙웰 GPU 프로세서가 투입되며, 이는 시장에서 가장 강력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시스템 중 하나다. 파이낸셜 타임스에 따르면 미스트랄은 이번 확장을 위해 10억 달러 규모의 신규 자금 조달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미스트랄 컴퓨트(Mistral Compute)라는 이름으로 출시될 이 플랫폼은 유럽 기업들이 미국이나 중국 클라우드 기업에 의존하지 않고 자체 AI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수 있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한다. BNP 파리바, 오렌지, SNCF, 탈레스, 베올리아, 슈나이더 일렉트릭 등이 첫 고객 및 파트너로 참여한다.
독일에 세계 최초 산업용 AI 클라우드 등장
엔비디아의 유럽 진출은 프랑스에 그치지 않는다. 독일에는 세계 최초 산업용 AI 클라우드가 구축된다. 이 AI 팩토리는 NVIDIA DGX B200 시스템과 NVIDIA RTX PRO Server를 포함해 총 1만 개의 GPU를 탑재하며, 유럽 업계 리더들이 설계, 엔지니어링, 시뮬레이션부터 공장 디지털 트윈과 로보틱스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조 과정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BMW 그룹, 마세라티, 메르세데스 벤츠, 셰플러 등 유럽 제조업체들이 앤시스, 케이던스, 지멘스와 같은 소프트웨어 리더들의 NVIDIA 가속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하게 된다. 특히 지멘스와의 파트너십 확장은 차세대 산업용 AI와 디지털화를 가속화하는 핵심 동력이 될 전망이다.
3,000 엑사플롭 규모의 거대한 계획
엔비디아가 제시한 유럽 AI 인프라 구축 계획의 전체 규모는 가히 압도적이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은 기술, 클라우드 제공업체와 통신사 생태계를 통해 자국 내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으며, 여기에는 소버린 AI를 위한 3,000 엑사플롭 이상의 NVIDIA Blackwell 컴퓨팅 리소스가 제공될 예정이다.
이 생태계에는 도민(Domyn), 미스트랄 AI, 네비우스(Nebius), 엔스케일(Nscale), 오렌지, 스위스컴, 텔레포니카, 텔레노르 등 주요 통신사와 클라우드 업체들이 참여한다.
영국에서는 런던 테크 위크에서 14,000개의 NVIDIA Blackwell GPU 배치 계획이 발표되었고, Starmer 총리는 “석탄과 전기가 우리의 과거를 정의했듯, AI는 우리의 미래를 정의한다”며 2030년까지 AI 연구 컴퓨팅에 약 10억 파운드를 투자할 것이라고 밝혔다.
각국 정상들의 전폭적 지지
이번 엔비디아의 유럽 진출에는 각국 정상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뒷받침되고 있다. 프랑스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프랑스는 경제 발전, 시민 복리, 가치 수호를 위한 AI 투자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며 “국내 기술 혁신가와 NVIDIA와의 긴밀한 협력으로 연구자, 기업가, 공공 기관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복잡한 과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도구를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산업부 장관 아돌포 우르소는 “이번 협정은 이탈리아의 기술 주권을 강화하고, 기업이 데이터 관리를 위한 안전하고 경쟁력 있는 접근을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전략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AI 팩토리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
젠슨 황이 제시한 ‘AI 팩토리’ 개념은 기존 데이터센터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이다. 그는 “이 AI 팩토리들은 토큰을 생성하게 될 것이며, 이 토큰이 현대 인텔리전스의 원재료가 된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센터가 수동적인 데이터 저장 공간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지능을 생산하는 ‘토큰 팩토리’로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전기와 같이 필수적인 사회 기간시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단순한 컴퓨팅 파워 제공을 넘어 각국이 자체적으로 AI 지능을 생산하고 관리할 수 있는 주권적 인프라를 의미한다. NVIDIA 젠슨 황 CEO는 “모든 산업 혁명은 인프라에서 시작된다. 전기와 인터넷이 그랬듯, AI는 이 시대의 필수적인 인프라”라며 “유럽 각국 정부와 업계의 과감한 리더십으로 AI는 향후 여러 세대에 걸친 획기적 혁신과 번영을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정학적 함의와 미래 전망
엔비디아의 이번 행보는 글로벌 AI 패권 구도에 중대한 변화를 예고한다. 미국과 중국이 AI 기술과 반도체를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유럽이 제3의 독립적 AI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와 미스트랄 AI의 파트너십은 단순한 사업 협력을 넘어 지정학적 의미를 내포한다. 유럽, 특히 프랑스는 ‘디지털 주권’을 강조하며 미국과 중국 기술 대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러한 변화는 AI 기술의 민주화와 동시에 새로운 경제적 종속성 구조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누가 이러한 ‘AI 팩토리’를 장악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경제적 종속성과 지정학적 영향력 구조가 형성될 수 있으며, 데이터 주권과 ‘AI 생성 지능’의 국경 간 이동에 대한 새로운 규제 논의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젠슨 황의 유럽 순방과 ‘주권 AI’ 전략은 결국 각국이 자국의 언어와 문화에 맞는 독립적인 AI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메시지다. 이는 AI가 단순한 기술을 넘어 국가 안보와 경제 주권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유럽의 AI 독립성 확보 노력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리고 이것이 글로벌 AI 패권 구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