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유럽 경제가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다. 유럽 최대 경제국 독일이 2년간의 침체를 끝내고 회복 기조로 전환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EU 차기 예산을 둘러싼 회원국 간 갈등이 동시에 불거지고 있다. 이 두 사안은 향후 유럽 경제 전반의 방향성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주목받고 있다.
독일 경제, 2년 침체 터널 끝에서 희망의 빛
독일 경제연구소들은 2025년 독일 경제가 2년 연속 수축을 끝내고 성장세로 전환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발표했다. 키일 세계경제연구소(IfW)는 올해 성장률을 기존 0.0%에서 0.3%로 상향 조정했으며, 이는 1분기 실질 GDP가 전분기 대비 0.4% 증가한 성과에 힘입은 것이다.
독일 경제 회복의 주요 동력은 여러 방면에서 나타나고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의 기준금리 인하가 소비 심리 개선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제조업 중심의 수출 부문도 점진적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실질 임금 상승으로 가처분 소득이 늘면서 내수 확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함부르크 세계경제연구소는 인플레이션이 2024년 2.2%에서 2025년 1.9%로 지속 완화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물가 안정이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려 요소들이 남아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확산과 미국의 추가 관세 가능성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독일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2025년 2월 조기 총선을 앞둔 정치적 불확실성도 기업 투자 심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EU 예산 협상, 독일의 강경한 선 긋기
독일 경제 회복 전망과 함께 주목받는 또 다른 이슈는 EU의 2028-2034년 다년 재정계획(MFF)을 둘러싼 갈등이다. 독일 정부는 최근 정책보고서를 통해 “GDP 대비 EU 예산 상한을 높이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표명했다.
이는 EU 최대 순기여국으로서 독일이 추가 재정 부담을 거부한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특히 팬데믹 시기 도입된 공동채권(NextGenerationEU) 연장에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독일의 이런 입장은 EU 내 다른 회원국들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우크라이나 재건, 방위력 강화, 녹색 전환, 경쟁력 확보 등을 위해 예산 구조 개편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변화가 가져올 새로운 동력
독일의 경제 정책 방향에 중대한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2025년 2월 23일 조기 총선에서 기민/기사당이 1위를 차지하며 메르츠 후보의 총리직 수행이 유력해졌다. 새 정부는 경제 회복과 경쟁력 강화에 더욱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기존 사민당-녹색당-자민당 연정이 붕괴하면서 환경 및 기후변화 대응정책보다는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경제정책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이는 독일 경제의 구조적 문제 해결에 새로운 모멘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구조적 과제들, 여전히 산적
하지만 독일이 해결해야 할 구조적 문제들은 여전히 많다. 높은 에너지 비용, 지나친 관료주의,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 성장을 저해하는 고질적 요소로 지적되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 생태계의 위기는 심각한 수준이다. 2024년 독일 스타트업 파산 건수가 336건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으며, 대표적인 스타트업인 볼로콥터와 넘배트도 파산 절차를 밟았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투자 유치가 어려워진 것이 주요 원인이다.
유로존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
독일 경제의 부진은 유로존 전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24년 4분기 EU 국내총생산은 전분기 대비 0.1% 성장에 그치며 유로존 경제는 최종적으로 0.7%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는 2.8%의 성장률을 보인 미국에 크게 뒤처지는 수준이다.
유럽중앙은행은 경기 부양을 위해 2025년 1월 5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하며 기준금리를 2.75%로 낮췄다. 올해에도 몇 차례 더 금리 인하가 있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어,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부양 노력이 계속될 전망이다.
EU 예산 갈등의 깊은 배경
EU 예산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한 재정 문제를 넘어서는 의미를 갖는다. 독일을 비롯한 북유럽 순기여국들과 동유럽 및 남유럽 수혜국들 간의 구조적 이해관계 충돌이 바탕에 깔려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방위비 증액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독일은 추가 부담에 대해 선을 그은 상황이다. 이는 향후 EU의 공동 정책 추진에 제약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미래를 향한 과제와 전망
독일 경제의 회복과 EU 예산 갈등 해결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독일이 경제적 여력을 회복해야 EU 차원의 공동 정책에도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다. 첫째, 새 독일 정부의 경제 정책이 실제로 성장률 제고에 기여할 수 있을지의 여부다. 둘째, EU 회원국 간 예산 분담 방식에 대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셋째, 미국과의 무역 갈등이나 중국 경제 둔화 등 대외 리스크 요인들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도 관건이다.
마무리: 회복이냐 분열이냐의 갈림길
2025년 유럽은 ‘회복이냐 분열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독일 경제의 회복 조짐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이지만, EU 내부의 예산 갈등은 공동체로서의 결속력을 시험하는 중대한 도전이다.
독일이 경제 회복을 통해 유럽 전체를 견인할 수 있을지, 아니면 예산 갈등이 EU의 통합 동력을 약화시킬지는 향후 몇 개월간의 정치적 협상 과정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회원국 간의 상호 이해와 타협을 통해 지속 가능한 해법을 찾는 것이 유럽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결국 독일의 경제 회복과 EU의 예산 합의는 유럽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두 개의 퍼즐 조각이다. 이 두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유럽 경제의 향후 10년이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