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고강도 관세 정책으로 바닥을 기던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미시간 대학교가 발표한 6월 소비자 심리지수가 6개월 만에 상승세로 돌아서면서, 경제 전문가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과연 이번 반등이 일시적 회복일까, 아니면 본격적인 경기 회복의 신호탄일까?
16% 급반등, 그러나 여전한 불안감
미시간 대학교 소비자 조사연구소가 발표한 6월 소비자 심리지수는 전월 대비 16% 급등했다. 이는 지난 6개월간 계속된 하락세를 깨뜨린 첫 번째 상승이다. 하지만 기뻐하기엔 이르다. 현재 수치는 여전히 2024년 12월보다 20% 낮은 수준이다.
주목할 점은 이번 상승이 전 계층에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령, 소득, 자산, 정치적 성향, 지역을 불문하고 모든 그룹에서 심리 개선이 확인됐다. 특히 단기와 장기 기업 환경 전망이 가파르게 상승했는데, 이는 관세 압박이 다소 완화됐다는 인식과 맞물린다.
관세 쇼크에서 벗어나는 조짐
지난 4월 트럼프 행정부가 발표한 극강의 관세 정책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겼다. 당시 조사 응답자의 4분의 3이 자발적으로 관세를 언급할 정도였다. 월마트를 비롯한 대형 소매업체들이 가격 인상을 예고하면서 소비자들의 우려는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6월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소비자들이 극도로 높은 관세 발표의 초기 충격에서 다소 안정을 되찾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5월 중순 미·중 간 90일 관세 유예 합의가 발표된 이후 긍정적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인플레이션 기대치, 극적인 하락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인플레이션 기대치다. 1년 후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전월 6.6%에서 5.1%로 급락했다. 이는 3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도 2개월 연속 하락해 5월 4.2%에서 6월 4.1%로 떨어졌다.
관세가 미래 인플레이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소비자들의 우려도 6월 들어 다소 누그러졌다. 물론 여전히 2024년 하반기 수준보다는 높지만,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한 공포는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연준에 던지는 새로운 화두
이번 소비자 심리 개선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게 새로운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안정되고 소비자 심리가 회복되면서 금리 정책에 대한 유연성이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은 연준이 2025년 하반기 중 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만약 앞으로 발표될 소비자물가지수(CPI)와 고용지표가 이번 심리 개선과 같은 방향을 보인다면,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에도 실질적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여전히 남아있는 경계심
하지만 마냥 낙관하기엔 이르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경제의 하방 리스크를 폭넓게 인식하고 있다. 기업 환경, 개인 재정, 고액 상품 구매 여건, 노동시장, 주식시장에 대한 견해가 모두 6개월 전인 2024년 12월보다 훨씬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번 개선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들은 여전히 조심스럽고 경제 궤도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특히 무역 정책이 여전히 내년 인플레이션 상승에 기여할 수 있다는 광범위한 믿음이 존재한다.
정치 성향별로 다른 온도차
흥미로운 점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온도차다.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장기 인플레이션 기대치가 크게 상승했는데, 이는 3월 1991년 이후 최고 수준인 4.6%를 기록했다. 반면 민주당 지지자들의 심리는 여전히 침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공화당 지지자들조차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의 11월 5일 선거 승리 이후 처음으로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심리가 하락한 것이다.
소비 지출 회복의 신호탄일까
소비자 심리 회복이 실제 소비 지출 증가로 이어질지가 관건이다. 미국 GDP에서 개인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약 70%에 달하는 만큼, 소비자 심리 변화는 경제 전반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크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신중한 관측을 보이고 있다. 과거 소비자 심리지수 하락이 반드시 소비지출 감소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고, 현재의 소득 증가세 등을 감안할 때 대폭적인 소비지출 감소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이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지표들
6월 27일 최종 6월 소비자 심리지수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이번 수치가 예비 발표 내용을 확인해줄지, 아니면 추가적인 개선을 보여줄지 주목된다.
또한 7월 중순부터 시작되는 2분기 기업 실적 발표 시즌도 중요한 시험대다. 소비자 심리 회복이 실제 기업 매출 증가로 연결됐는지 확인할 수 있는 핵심 타이밍이다.
조심스러운 희망의 시작
이번 소비자 심리지수 상승은 단순한 수치 개선을 넘어 미국 경제의 저력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할 수 있다. 관세 쇼크라는 전례 없는 충격 속에서도 미국 소비자들이 적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치 안정화, 무역 긴장 일부 완화, 그리고 고용시장의 상대적 안정이라는 3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소비자들이 점차 ‘불확실성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관세 정책의 향방, 중동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 등 여러 변수가 남아있다. 이번 6개월 만의 반등이 지속 가능한 회복의 출발점이 될지, 아니면 일시적 반등에 그칠지는 앞으로 몇 달이 지나봐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미국 소비자들이 극도의 불안감에서 벗어나 조심스럽게 희망을 품기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심리 변화가 실물경제로 전이된다면, 미국 경제는 예상보다 빠른 연착륙에 성공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