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5. 국가 영역과 통일조항 – 영토조항의 해석과 통일의지의 헌법적 구현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인 영토는 국가 존립의 물리적 기반이자 주권이 미치는 공간적 범위를 의미한다. 우리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현실 속에서 탄생한 독특한 규정들이다. 이들 조항은 단순히 현재의 영토 범위를 확인하는 차원을 넘어서 통일에 대한 헌법적 의지와 미래 비전을 담고 있다. 분단 75년이 지난 현재, 이러한 헌법 조항들의 의미를 재해석하고 현실적 적용 방안을 모색하는 것은 중요한 헌법적 과제가 되었다.

헌법상 영토조항의 의미와 해석

영토 개념의 헌법적 정의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1948년 제헌헌법부터 현재까지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 겉보기에는 단순해 보이는 이 조항이지만, 분단 현실과 맞물려 복잡한 해석 문제를 제기한다.

영토는 국가 주권이 배타적으로 행사되는 지리적 공간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육지뿐만 아니라 내수, 영해, 상공도 포함된다. 우리 헌법이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라고 한 것은 한반도 전체와 주변 섬들을 모두 대한민국의 영토로 본다는 의미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휴전선 이북 지역에 대해 대한민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헌법상 영토와 실제 지배 영역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가 핵심 쟁점이다.

영토조항에 대한 학설의 대립

영토조항의 해석을 둘러싸고는 크게 세 가지 학설이 대립한다. 첫째, 당위규범설은 헌법 제3조를 현실 확인 규정이 아닌 미래 지향적 당위 규범으로 본다. 즉, 한반도 전체가 마땅히 대한민국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는 헌법적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둘째, 현실확인설은 헌법 제3조를 현재의 영토 범위를 확인하는 규정으로 본다. 북한 지역도 법리상 대한민국의 영토이므로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불법적으로 점거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고 본다.

셋째, 잠정적 분할 통치설은 분단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통일 지향성을 유지하는 절충적 해석이다. 현재는 남북이 각각 일정 지역을 관할하지만, 장래에는 평화적 통일을 통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입장

헌법재판소는 일관되게 현실확인설에 가까운 입장을 유지해왔다. 1993년 독일 통일 관련 결정에서 “북한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으나 이는 국가가 아니고 대한민국의 영토에 불법적으로 설립된 반국가단체”라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후 남북 관계가 발전하면서 헌법재판소의 입장도 미묘하게 변화했다. 2000년 국가보안법 위헌소원 사건에서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은 변함이 없으나, 특수관계론에 입각한 남북 교류는 가능하다”는 유연한 해석을 보였다.

대법원도 비슷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는 않지만, 남북 간 합의나 교류에 대해서는 사안별로 구체적 타당성을 고려하여 판단하는 경향을 보인다.

통일조항의 헌법적 의미와 내용

헌법 제4조의 통일 의지

헌법 제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규정한다. 이 조항은 1987년 현행 헌법에서 신설된 것으로, 통일에 대한 헌법적 의지를 명확히 천명한 의미 있는 규정이다.

제4조는 세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첫째, 통일 지향성이다. “통일을 지향한다”는 표현은 통일이 헌법상 의무이자 목표임을 의미한다. 둘째, 통일의 방법으로 평화적 방법을 명시했다. 이는 무력 통일을 배제하고 대화와 협상을 통한 해결을 추구한다는 의미다. 셋째, 통일된 국가의 성격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규정했다.

통일 정책의 헌법적 근거

헌법 제4조는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 국가기관에게 구체적 의무를 부과한다.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표현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통일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헌법적 의무를 의미한다.

이러한 의무는 주로 행정부에 부과되지만, 입법부와 사법부도 통일 지향적인 정책과 해석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를 들어 남북 교류나 협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때는 통일 지향성을 고려해야 하고, 관련 사건을 재판할 때도 이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

헌법 제4조가 통일의 기준으로 제시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는 통일이 단순히 영토적 결합이 아니라 가치적 통합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되어야 한다는 헌법적 의지의 표현이다.

하지만 이 조항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경직된 해석론은 북한이 자유민주주의를 완전히 수용해야만 통일이 가능하다고 본다. 반면 유연한 해석론은 통일 과정에서 점진적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실현되어도 된다고 본다.

분단 현실과 헌법 규범의 괴리

사실과 규범의 긴장 관계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은 분단이라는 현실과 지속적인 긴장 관계에 있다. 헌법은 한반도 전체를 대한민국의 영토로 규정하고 통일을 지향한다고 선언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분단이 75년간 지속되고 있다.

이러한 괴리는 헌법 해석과 적용에 어려움을 야기한다. 예를 들어 북한 주민의 법적 지위, 북한 정권의 성격, 남북 간 합의의 효력 등에 대해 일관된 해석을 내리기 어렵다. 헌법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것이 과제다.

북한의 법적 지위 문제

북한의 법적 지위는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다. 헌법상으로는 북한이 국가가 아니라 반국가단체이지만, 실제로는 국제법상 국가의 요건을 갖추고 있고 많은 나라들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특수관계론”이 등장했다. 북한을 완전한 외국으로 보지도 않고 완전한 국내로 보지도 않는 특수한 관계로 파악하자는 것이다. 남북기본합의서나 6.15 공동선언 등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특수관계론도 한계가 있다. 어디까지가 특수관계이고 어디서부터가 일반적인 국제관계인지 명확한 기준이 없다. 또한 헌법의 영토조항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도 여전히 과제로 남아 있다.

통일의 현재적 의미와 과제

통일 개념의 변화

분단 초기에는 통일이 주로 영토적 재결합의 의미로 이해되었다. 이산가족 상봉이나 자유로운 왕래가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통일 개념도 변화했다. 단순한 영토 통합을 넘어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통합까지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 발전했다.

또한 급속한 통일보다는 점진적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독일 통일의 경험은 급속한 통일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을 보여주었고, 이는 우리에게도 시사점을 주었다. 통일 비용, 사회 통합, 제도 조화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21세기 통일 환경의 변화

21세기 들어 통일을 둘러싼 환경도 크게 변화했다. 냉전 종료 이후 이념 대립보다는 경제적 실익이 더 중요해졌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등 동북아시아의 지정학적 구조도 변화했다.

북한의 핵 개발은 통일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안보 위협과 평화 통일이라는 가치 사이에서 딜레마가 발생했다. 한편으로는 핵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통일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화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있다.

남북 관계의 제도화 필요성

현재의 남북 관계는 정권 변화에 따라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일관된 통일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장애가 되고 있다. 따라서 남북 관계를 좀 더 제도화하고 안정화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기본합의서나 6.15 공동선언, 10.4 선언 등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법적 구속력이나 이행 보장 장치가 부족하다. 남북 관계를 규율하는 더 체계적이고 실효적인 법적 틀이 필요하다.

또한 국내적으로도 통일 정책에 대한 초당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통일 정책이 급변한다면 일관성 있는 대북정책을 추진하기 어렵다.

통일 헌법의 방향과 과제

통일 헌법 논의의 필요성

현행 헌법은 분단 상황을 전제로 만들어진 것이다. 통일이 실현되면 새로운 헌법이 필요할 것이다. 통일 헌법은 남북 양쪽의 주민들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하고, 통일된 국가의 미래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통일 헌법 논의는 아직 본격화되지 않았지만, 미리 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독일의 경우 통일 이전부터 통일 헌법에 대한 연구가 활발했고, 이는 실제 통일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통일 헌법의 주요 쟁점들

통일 헌법을 논의할 때 제기될 수 있는 주요 쟁점들을 미리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국가 형태와 정부 형태다. 연방제인가 단일국가인가, 대통령제인가 의원내각제인가 하는 문제다.

둘째, 기본권 보장 수준이다. 남북 간에는 기본권에 대한 인식 차이가 크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권적 관점과 집단의 이익을 강조하는 사회권적 관점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과제다.

셋째, 경제 제도다. 시장경제와 계획경제를 어떻게 통합할 것인가, 사유재산제를 어느 정도까지 인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 독일의 경우 서독 체제로 흡수 통일되었지만, 우리의 경우는 다른 방식이 될 수도 있다.

점진적 통합의 헌법적 뒷받침

급속한 통일보다는 점진적 통합이 현실적이라면, 이를 뒷받침할 헌법적 장치도 필요하다. 남북연합이나 국가연합 같은 중간 단계를 거쳐 최종적으로 완전 통일에 이르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이 경우 현행 헌법도 일부 개정이 필요할 수 있다. 남북 간 특별한 관계를 인정하고, 공동기구 설치를 위한 헌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 등이 그 예다. 헌법 제6조의 조약 체결 조항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국제법적 관점에서의 통일 문제

유엔 헌장과 통일 원칙

유엔 헌장은 민족자결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는 각 민족이 자신의 정치적 지위를 자유롭게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의미다. 한민족의 통일 의지도 이러한 맥락에서 국제법적 정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민족자결원칙과 영토보전원칙이 충돌할 때는 복잡한 문제가 생긴다. 북한도 국제법상 독립국가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일방적인 통일은 영토보전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따라서 상호 합의에 기초한 평화적 통일이 국제법적으로도 바람직하다.

주변국의 이해관계와 통일

한반도 통일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요국들은 모두 한반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통일 과정에서 이들 국가들의 협력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북한과 동맹 관계에 있는 중국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이 외교적 과제다.

통일 비용과 국제 협력

통일 비용은 천문학적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독일 통일 비용이 2조 달러를 넘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의 경우는 더 클 수도 있다. 이러한 비용을 우리만의 힘으로 감당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협력을 얻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 후 한반도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켜 국제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동북아 개발은행 같은 다자간 협력 기구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은 분단 현실 속에서도 통일에 대한 의지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헌법적 다짐이다. 이들 조항은 단순한 선언적 의미를 넘어서 국가기관과 국민에게 통일을 향한 노력을 계속하라는 헌법적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하지만 75년간 지속된 분단 현실은 이들 조항의 해석과 적용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헌법적 이상과 정치적 현실 사이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다. 경직된 해석으로는 현실적 해결책을 찾기 어렵고, 지나치게 유연한 해석은 헌법 정신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

앞으로는 통일 환경의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1세기의 통일은 20세기의 통일과는 다른 모습일 수밖에 없다. 급속한 흡수 통일보다는 점진적이고 단계적인 통합이 현실적이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의 제도화, 국제사회의 협력, 국민적 합의 형성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은 먼 미래의 일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과제다. 매일매일의 작은 노력들이 모여 통일의 토대를 만들어간다. 헌법의 영토조항과 통일조항은 그러한 노력의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꾸준히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평화로운 통일의 그날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