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이란 무엇인가
헌법은 국가의 기본 구조와 통치 체계를 규정하는 최고법이다. 단순히 많은 법률 중 하나가 아니라, 모든 법률과 제도의 토대가 되는 근본 규범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하며 국가의 정체성을 명확히 규정한다.
헌법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국가권력의 조직과 행사 방식을 정하고, 동시에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즉, 권력을 어떻게 나누고 견제할 것인지를 정하는 동시에, 국가권력이 침해해서는 안 되는 개인의 기본적 권리들을 명시한다. 이러한 이중적 기능 때문에 헌법을 ‘권력제한규범’이면서 동시에 ‘기본권보장규범’이라고 부른다.
헌법은 또한 국가 공동체의 기본 가치와 이념을 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 복지국가 이념 등이 헌법에 명시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모든 국가 활동의 지침이 된다. 따라서 헌법을 통해 그 나라가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파악할 수 있다.
헌법의 최고규범성과 그 근거
형식적 최고규범성
헌법이 최고규범이라는 것은 무엇보다 법체계 내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차지한다는 의미다. 이를 형식적 최고규범성이라고 한다. 우리 헌법 제6조 2항은 “외국인은 국제법과 조약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그 지위가 보장된다”고 규정하면서도, 이것이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모든 법률, 명령, 규칙, 조례 등은 헌법에 위반될 수 없으며, 만약 위반된다면 무효가 된다.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위헌 법령을 심사하여 헌법 질서를 수호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가 설립된 이후 수많은 법률과 행정명령들이 위헌 판결을 받아 효력을 상실했다.
이러한 형식적 최고규범성은 성문헌법을 가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헌법 조문 자체가 다른 모든 법령보다 우선한다는 원칙이 명확히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질적 최고규범성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단순히 형식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헌법이 담고 있는 내용 자체가 국가 공동체의 근본 가치를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도 최고의 지위를 갖는다. 이를 실질적 최고규범성이라고 한다.
헌법은 국민주권 원리, 민주주의 원리, 법치주의 원리, 기본권 존중 원리 등 현대 민주국가의 핵심 가치들을 담고 있다. 이러한 가치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리로서, 단순히 다수의 의견이나 정치적 편의에 따라 바뀔 수 없는 성격을 갖는다.
예를 들어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 행복추구권 같은 기본권은 어떤 법률로도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설령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로 법률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헌법의 기본 가치에 반한다면 무효가 된다. 이것이 바로 헌법의 실질적 최고규범성이 갖는 의미다.
헌법 우위의 구체적 실현 방식
위헌법률심판제도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보장하는 핵심 장치가 바로 위헌법률심판제도다. 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가 법률의 위헌성을 심사하는 집중형 헌법재판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일반 법원이 재판 과정에서 적용할 법률이 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면,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할 수 있다.
헌법재판소가 어떤 법률을 위헌이라고 판단하면, 그 법률은 즉시 효력을 상실한다. 이때 위헌 판결의 효력은 단순히 해당 사건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에게 미친다. 이를 ‘일반적 효력’ 또는 ‘대세적 효력’이라고 한다.
실제로 헌법재판소는 설립 이후 지금까지 수백 건의 위헌 결정을 내렸다. 호주제 관련 민법 조항, 간통죄,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제 미비 등이 위헌 판결을 받은 대표적 사례들이다.
헌법소원제도
개인이 직접 헌법재판소에 기본권 침해를 다툴 수 있는 헌법소원제도도 헌법 우위를 실현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법률이나 공권력 행사로 인해 기본권을 침해받았다고 생각하는 국민은 헌법소원을 청구할 수 있다.
헌법소원에는 법률 자체의 위헌성을 다투는 권리구제형 헌법소원과, 공권력 행사의 위헌성을 다투는 공권력행사형 헌법소원이 있다. 두 유형 모두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었음을 주장하는 것으로, 헌법이 개인의 권리 보호에서 갖는 최고성을 보여준다.
특히 공권력행사형 헌법소원은 행정기관이나 사법기관의 구체적 행위가 헌법에 위반되는지를 심사한다. 이는 헌법이 단순히 추상적 규범이 아니라, 국가권력의 모든 행사에 실질적 한계를 설정하는 살아있는 규범임을 보여준다.
개헌절차와 헌법의 경직성
경직헌법의 의미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보장하는 또 다른 중요한 장치가 바로 까다로운 개헌절차다. 헌법은 일반 법률보다 훨씬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만 개정할 수 있도록 규정되어 있다. 이를 경직헌법이라고 한다.
만약 헌법을 일반 법률처럼 쉽게 개정할 수 있다면,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의미를 잃게 된다. 정치적 상황에 따라 헌법이 수시로 바뀐다면, 헌법이 국가의 근본규범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의 개정에는 특별히 엄격한 요건이 요구된다.
우리 헌법은 개정안의 발의, 의결, 국민투표라는 세 단계의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 각 단계마다 높은 수준의 합의를 요구함으로써 헌법의 안정성을 보장하고 있다.
개헌 발의 요건
헌법 개정은 대통령 또는 국회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시작된다. 일반 법률안이 국회의원 10인 이상 또는 정부의 발의로 가능한 것과 비교하면, 훨씬 높은 요건이다. 국회의원 과반수라는 것은 현재 300명 중 151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은 행정부 수반으로서 국정 전반을 조망하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다. 다만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더라도 국회의 의결과 국민투표라는 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일방적으로 헌법을 바꿀 수는 없다.
발의 단계에서부터 높은 요건을 요구하는 이유는 개헌 논의 자체가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개헌안이 발의되면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고, 정치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도 크다. 따라서 충분한 정치적 합의가 있을 때만 개헌 논의를 시작하도록 한 것이다.
국회 의결 요건
개헌안이 발의되면 국회에서 의결해야 한다. 일반 법률안은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 출석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의결되지만, 개헌안은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의원 정수 300명을 기준으로 하면 20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이는 매우 높은 요건이다.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 하나의 정당이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차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개헌을 위해서는 여야 간 상당한 수준의 합의가 필요하다. 이는 개헌이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닌 국민 전체의 이익을 반영해야 한다는 헌법의 근본 정신을 보여준다.
국회 의결 요건이 까다로운 또 다른 이유는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이라는 점 때문이다. 헌법 개정은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야 하는데, 국민의 대표자들 사이에서도 압도적 합의가 있어야 국민 전체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있다.
국민투표 요건
국회에서 개헌안이 의결되더라도 바로 헌법이 개정되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국민투표를 거쳐 국민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헌법 개정에 관한 국민투표는 단순히 투표자 과반수가 아니라, 유권자 과반수의 찬성을 요구한다.
이는 헌법이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에 직접 기초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원리를 구현한 것이다. 아무리 정치권에서 합의가 이루어져도, 최종적으로는 국민이 직접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다.
국민투표 요건도 상당히 엄격하다. 투표율이 낮더라도 유권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높은 투표율과 높은 찬성률이 동시에 확보되어야 한다. 이는 개헌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확실할 때만 헌법 개정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한 장치다.
헌법 개정의 한계
개정 한계의 존재
헌법은 개정 절차를 규정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헌법의 모든 내용을 무제한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법학에서는 헌법 개정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다고 본다. 이를 개헌의 한계 또는 헌법 개정권의 한계라고 한다.
우리 헌법은 명시적으로 개정 한계를 규정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헌법의 기본 정신과 핵심 가치는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특히 인간의 존엄성, 민주공화제,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 등은 개헌으로도 폐지하거나 근본적으로 변경할 수 없다고 본다.
이러한 개정 한계론의 근거는 헌법이 단순한 실정법이 아니라 국가 공동체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근본규범이라는 데 있다. 만약 헌법의 핵심 가치까지 모두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은 헌법 개정이 아니라 새로운 헌법의 제정, 즉 헌법 혁명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실질적 개정 한계
실제로 헌법 개정에는 법적 한계뿐만 아니라 정치적, 사회적 한계도 존재한다. 아무리 법적으로 개정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국민의 의식과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예를 들어 현재 우리나라에서 군주제로의 개헌이나 기본권의 대폭 축소 같은 개헌안이 제시된다면, 국회 의결이나 국민투표 단계에서 거부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이 이미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개헌은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수반한다. 정치적 갈등을 야기할 수 있고, 법체계 전반의 정비가 필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개헌보다는 헌법 해석의 변화나 법률 개정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비교헌법적 관점에서 본 헌법의 최고규범성
각국의 헌법 체계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성문헌법을 가진 대부분의 국가에서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실현 방식은 나라마다 다르다. 미국은 연방대법원이 위헌법률심사권을 갖고 있고, 독일은 연방헌법재판소가 전담한다. 프랑스는 헌법재판소가 법률 제정 전에 위헌성을 심사하는 사전심사제를 채택하고 있다.
영국처럼 불문헌법 체계를 가진 나라에서는 의회주권 원리가 강하게 작동한다. 하지만 유럽인권협약 같은 국제조약이나 관습헌법적 원리들이 의회 권력에 대한 실질적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처럼 각국의 헌법 체계는 다르지만, 헌법적 가치가 다른 모든 법적 가치보다 우선한다는 기본 원리는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이는 현대 입헌주의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헌법의 특징
우리나라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독일 기본법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헌법재판소를 통한 집중형 헌법재판제도, 헌법소원제도 등이 대표적이다. 다만 우리나라는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권을 인정하는 등 독특한 특징도 있다.
우리 헌법의 개정 절차는 세계적으로 볼 때 상당히 엄격한 편에 속한다. 국회 의결 요건(재적의원 3분의 2 이상)과 국민투표 요건(유권자 과반수 찬성)을 모두 높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헌법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반면 일부 국가들은 더 유연한 개헌 절차를 두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짧은 기간 동안 여러 차례 헌법을 개정한 역사적 경험 때문에, 헌법의 안정성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설계한 것으로 보인다.
결론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현대 민주국가의 핵심 원리다. 헌법이 모든 법 위에 군림하는 것은 단순한 형식적 위계 때문이 아니라, 헌법이 담고 있는 민주주의, 인권, 법치주의 등의 가치가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원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위헌법률심판제도와 헌법소원제도를 통해 헌법의 최고규범성을 실질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또한 까다로운 개헌 절차를 통해 헌법의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러한 제도적 장치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함으로써 헌법이 진정한 최고규범으로 기능할 수 있다.
헌법의 최고규범성은 고정불변의 원리가 아니다. 시대 변화에 따라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기도 하고, 구체적 실현 방식도 발전해 나간다. 하지만 국가권력을 제한하고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한다는 헌법의 본질적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헌법이 최고규범으로서 갖는 진정한 의미라고 할 수 있다.